이 선수가 돌고 돌아 K리그로 오기까지 겪었던 시련.
J리그와 호주 무대를 거쳤지만 어려움을 겪었다.
설상가상 울산에서도 자리를 잡는 데 실패했다.
주인공은 이기제.
그의 축구 인생 터닝 포인트는 수원으로의 입단이었다.
수원 입단 이후 보다 많은 출전 기회를 받았다.

하지만 여기서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다.
상무에 불합격하며 상근으로 병역 의무를 다했다.
결국 K3리그 김포시민축구단에서 활약했던 시기.
주중엔 상근 복무를 하고, 주말엔 K3리그 경기를 뛰었다.
결과적으로 이 시기는 이기제의 축구 인생에서 두 번째 터닝 포인트가 됐다.

팀 사정상 어쩔 수 없이 소화한 멀티 포지션.
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서 고루 활약했다.
그 결과 축구에 눈을 뜨며 전역 후 수원에서 뒤늦은 전성기를 맞았다.

지난 시즌 리그 베스트급 기량을 뽐낸 이기제.
단점이라던 수비력까지 보강한 데다 압도적인 킥력까지 더해졌다.
그 결과 벤투 감독의 호출까지 받았다.
월드컵 최종 명단에선 아쉽게 탈락했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좋은 경험이었다.

그야말로 극적인 역전을 이뤄낸 이기제의 선수 생활.
하지만 이기제에게 처음부터 시련만 찾아온 건 아니었다.
청소년 대표팀 시절 이기제의 입지는 탄탄했다.
2011 U-20 월드컵 당시 김진수가 이기제의 백업 역할을 맡았을 정도다.

당시 16강전 스페인을 상대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던 대표팀.
승부차기 끝에 패했지만 경기 내내 스페인을 긴장케 했다.
당시 김경중, 백성동, 장현수 등 많은 선수들이 스타로 떠올랐다.
그리고 이기제 역시 라이징 스타로 화려하게 주목받았다.

더 놀라운 건 국내에서만 주목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.
첼시의 전 수석 스카우트이자 기술고문 데 비세르 역시 이기제를 주목했다.
참고로 데 비세르는 로만 구단주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던 스카우트였다.
데 비세르의 추천으로 첼시에 입단한 선수만 해도 한 트럭이다.

그정도의 스카우트가 2011년 대회 이후 드림팀 명단을 작성한 바 있다.
놀라운 건 이 명단에 당당히 이기제가 들었다는 사실.

심지어 짧게 보이는 이 명단 중 첼시에 입단한 선수만 세 명이다.
오스카, 로메우 뿐 아니라 쿨리발리 옆 수비수 오메루오 역시 첼시에 입단했다.

그만큼 청소년 대표 시절 이기제의 활약은 어마어마했다.
경우에 따라 첼시 입단까지도 바라볼 수 있었던 그 시절.
이기제 본인도 어리둥절할 명단이다.

이후 찾아온 시련도 극복하며 본격적으로 맞게 된 전성기.
앞으로의 선수 생활에도 행운이 따르길 응원한다.